불확실성에 지친 자산가, 보석에 눈길… ‘조각투자’ 길도 열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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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기획]위기에 더 주목받는 ‘주얼리테크’의 세계
실리콘밸리은행발 은행 위기로 안전자산인 보석 투자에 관심 커져
일반인까지 1캐럿 다이아에 관심… 제한적인 공급으로 가격 변동 낮고
증여세 없어 상속 수단으로 매력… 보석 ‘쪼개기 투자’도 가능해져

울 강남구 미래에셋증권 WM강남파이낸스센터에서 열린 ‘주얼리테크 세미나 초대전’ 참가자들이 다이아몬드에 대한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유색 다이아몬드 등이 소개됐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울 강남구 미래에셋증권 WM강남파이낸스센터에서 열린 ‘주얼리테크 세미나 초대전’ 참가자들이 다이아몬드에 대한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유색 다이아몬드 등이 소개됐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여러분은 어떤 색이 가장 귀한 다이아몬드라고 알고 계세요?”

25일 오후 2시 서울 강남구 미래에셋증권 WM강남파이낸스센터. 이날 열린 ‘주얼리테크 세미나 초대전’의 큐레이션을 맡은 김손비야 경희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가 참가자들을 향해 질문했다. 20여 명의 참가자 사이에서 “핑크” “청(靑) 다이아” 등 답을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김 겸임교수는 “가장 희귀한 다이아몬드는 붉은 색상”이라며 “블루, 핑크 다이아몬드도 하이엔드 다이아몬드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날 세미나에서는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유색 다이아몬드가 소개됐다. 강사로 나선 신혜정 팍스컨설팅 대표는 부의 수단이면서 휴대성이 좋은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의 특징을 “주머니 속의 부동산”에 비유했다.

참가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투자자들은 페어 컷(물방울 형태)의 핑크 다이아몬드가 달린 목걸이, 핑크 다이아몬드가 그린 다이아몬드를 감싼 반지 등 다양한 모양과 색상의 보석을 집중해서 바라봤다. 몇몇 참가자들은 다이아몬드에 관한 상식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신 대표는 “하이엔드 보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라며 보석 투자의 잠재력에 대해 강조했다. 참가자 한규식 씨(60)는 세미나가 끝난 뒤 “보석은 이동의 간편성과 세금 면에서 편리성을 갖는 것 같다”며 “기회가 된다면 투자를 해보고 싶다”고 답했다.

거액 자산가들 사이에서 보석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실리콘밸리은행(SVB)발 은행 위기 등으로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자 변동성이 큰 주식보다는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보석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금융당국이 토큰 증권(ST)을 도입함에 따라 보석 조각투자의 길이 열린다는 점도 주얼리테크에 대한 관심을 부추겼다. 일반 투자자들도 금, 은은 물론이고 백금, 다이아몬드로 투자 폭을 넓혀 가고 있다.

● 침체 때 빛 발하는 ‘보석투자’
서울 강남구 미래에셋증권 WM강남파이낸스센터에서  열린 ‘주얼리테크 세미나 초대전’ 참가자들이 다이아몬드에 대한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유색 다이아몬드 등이 소개됐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서울 강남구 미래에셋증권 WM강남파이낸스센터에서 열린 ‘주얼리테크 세미나 초대전’ 참가자들이 다이아몬드에 대한 설명을 경청하고 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유색 다이아몬드 등이 소개됐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고액 자산가들이 대표적 안전자산인 금에서 나아가 최상급 보석 투자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희소성과 그로 인한 낮은 변동성이다. 크리스티의 국제 주얼리 담당자인 라훌 카다키아도 지난해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경매가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속에서도 당초 추정치를 초과하여 흥행하자 “다이아몬드와 보석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위험을 회피(Hedge)하는 데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석은 희소성을 가져 가치가 쉽게 변하지 않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부동산, 증권 등 전통자산의 가치가 떨어졌지만 블루 다이아몬드인 ‘비텔스바흐-그라프’가 2430만 달러(약 325억 원)에 낙찰돼 다이아몬드 경매 최고가를 경신한 바 있다. 제한적인 공급은 보석의 가격을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전 세계 핑크 다이아몬드의 약 90%를 생산했던 호주 아가일 광산은 2020년 37년 만에 문을 닫았다. 신 대표는 “채광의 고갈, 광산의 폐광 등으로 희소한 보석들의 몸값 상승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최상급 보석을 보유할 경우 절세 효과도 얻을 수 있다. 매년 보유세를 내야 하는 부동산과 달리 보석은 구매 이후에는 별도로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증여세, 상속세 등을 피하기 위한 재산 상속 수단으로 애용되고 있다.

이러한 이점을 바탕으로 주얼리 시장 규모는 커지는 추세다. 국내 민간 연구기관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가 유로모니터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세계 주얼리 시장 규모는 2021년보다 4.4% 성장한 3682억 달러(약 492조 원)로 추정된다. 지난해 국내 주얼리 시장 규모도 전년 대비 13.8% 증가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기 억눌렸던 소비가 빠르게 회복되면서 2020년 5조4117억 원, 2021년 5조5727억 원, 2022년 6조3421억 원으로 점차 규모가 커지고 있다.

이렇듯 확대되는 보석 시장의 최상위 주자는 단연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다. 미국보석학회(GIA·Gemological Institute Of America)에 제출되는 다이아몬드 중 유색 다이아몬드로 분류되는 것은 3% 미만일 정도다. 이 때문에 유색 다이아몬드는 소더비와 크리스티의 최상위 경매인 ‘매그니피슨트 주얼스(Magnificent Jewels)’에서 낙찰가 상위권에 오르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블루 다이아몬드 ‘드 비어스 컬리넌 블루’는 지난해 4월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예상가인 4800만 달러(약 641억 원)를 뛰어넘는 5750만 달러(약 768억 원)에 낙찰됐다. 지난해 10월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윌리엄슨 핑크 스타’가 5770만 달러(약 771억 원)에 낙찰된 후 영국 보석회사 77다이아몬드의 토비아스 코마인드 전무이사는 “불안정한 경제 속에서 다이아몬드의 회복력을 보여 주는 놀라운 결과”라며 “세계 최고 품질의 다이아몬드 중 일부는 지난 10년 동안 가격이 2배로 올랐다”고 분석했다.

● 대중화되는 주얼리테크

일반 소비자들도 다이아몬드 등을 중심으로 점차 보석 투자에 눈을 떠가고 있다. 서울 종로구의 한 귀금속업체 관계자는 “SI2(투명도 등급)의 1캐럿 다이아몬드는 사고팔 때 큰 차이가 없어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다”며 “환금성을 원하는 분들은 저렴하게 구매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만약 투자를 고려한다면 예물을 고를 때도 가치를 따져 봐야 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물인 다이아몬드의 경우 등급에 따라 가격 차이가 크다. 다이아몬드 등급을 결정하는 4가지 요인은 색상(Color), 캐럿(Carat), 연마(Cut), 투명도(Clarity)로, ‘4C’라고 불린다. 무게가 올라도 가격이 일정한 금과 달리 다이아몬드는 캐럿이 클수록 가격이 크게 오른다. 시장조사업체 다이아몬드SE에 따르면 이달 1일 기준 1∼1.49캐럿 다이아몬드의 캐럿당 평균 가격은 5196달러(약 694만 원)지만 5캐럿 이상인 경우 2만5781달러(약 3445만 원)에 달한다.

또 전문가들은 다이아몬드 투자를 원할 경우 처음부터 높은 등급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예물로 자주 쓰이는 3∼5부 다이아는 사고팔 때 가격 차이가 크다. 합성 다이아몬드의 보편화 등으로 희소성이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결혼인구 감소, 예물 간소화로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서민철 한국금거래소 이사는 “3∼5부 다이아몬드를 재판매해서 이득을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비싼 다이아몬드일수록 가격은 덜 떨어지고, 오히려 오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보유한 다이아몬드를 되팔 생각이 있다면 관리에도 유의해야 한다. 다이아몬드는 경도가 높지만 다이아몬드끼리 부딪쳤을 경우 깨지거나 금이 가 투명도나 연마 등급이 떨어질 수 있다. 감정서가 없는 경우 새로 감정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감정서를 잘 보관하는 것도 중요하다.

수백만 원에 이르는 보석에 선뜻 투자하기가 망설여진다면 펀드 상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투자하는 방법도 있다. 최근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으로 하이엔드 제품 수요가 증가하며 관련 상품의 수익률이 오르고 있다. 까르띠에, 반클리프 아펠 등의 보석 브랜드를 소유한 리치몬트그룹에 투자하는 NH아문디자산운용의 ‘HANARO 글로벌럭셔리S&P’ 상장지수펀드(ETF)는 26일 마감 기준 지난해 말보다 27.3% 올랐다. 명품을 테마로 한 공모형 펀드 수익률 역시 상승하고 있다.

한편 금융당국이 ‘토큰 증권(ST·Security Token)’ 제도화에 나서면서 보석과 귀금속에 대한 ‘조각 투자’도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ST는 보석, 부동산, 미술품 등 고가 실물자산의 권리를 쪼개 ‘토큰화’한 뒤 발행하는 증권을 말한다. 하나증권은 코스닥 상장사 아이티센과 금·은 토큰증권발행(STO)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협의체 구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는 현물이나 관련 상품에만 투자할 수 있었지만 ST가 발행되면 투자자들이 귀금속을 쪼개서 매입할 수 있게 된다. 정윤석 미래에셋증권 WM강남파이낸스센터 수석매니저는 “토큰 증권의 도입으로 고가의 보석에 조각 투자가 이루어진다면 새로운 투자 영역이 구축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수연 기자 syeon@donga.com
#자산가#보석#조각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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