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법상 공적 의료지원 불가능
봉사단체 무료진료, 중증엔 한계
항공권 지원금 돌려받기 어려워
출입국사무소 송환 조치 소극적
“고용 단절 예방책 등 마련해야”
지난 3일 서울 중구 서울역 인근 텐트촌에 배, 곶감, 귤, 인스턴트 짜장밥이 올라간 제사상이 차려졌다. 새해 첫날에 세상을 떠난 대만 국적 노숙인 왕모(60)씨를 추모하기 위해서였다. 30여년 전 일자리를 구하러 한국에 온 그는 2012년부터 서울역에서 노숙 생활을 했다. 왕씨는 한 중화요릿집에서 주방장으로 일하다 손목 부상으로 실직 후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거리를 전전했다. 오랜 노숙 생활 도중 얻은 암과 고혈압으로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했지만, 인근 노숙인 센터 직원들은 한국 국적이 아닌 그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의료지원책이 없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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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노숙인은 일할 목적으로 한국에 입국했다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부닥치는 경우가 대다수다. 영등포구 한 쪽방에 거주하는 중국 국적자 여모(70)씨는 2016년 한국에 와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에서 간병인으로 2년 넘게 일했다. 치매 환자를 병간호하던 중 여씨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뇌경색이었다. 병원비로 가지고 있던 돈을 다 쓴 그는 살던 숙소에서도 쫓겨났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인력시장에 나가도 아무도 그를 써주지 않았다. 주차장에서 기거하다 한 목사의 도움으로 겨우 쪽방 한칸을 얻은 여씨는 “본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비행기 삯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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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인 기관들은 현행 노숙인복지법상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안재금 수원 다시서기노숙인종합지원센터장은 “한 대만 국적 노숙인이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통원치료를 받고 있는데 공적 지원이 불가능해 기관 후원금으로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몇몇 종교재단이 운영하는 소형병원에서 무료로 진료를 해주긴 하지만 중증인 경우 도움을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외국 노숙인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일도 쉽지 않다. 노숙인 기관 사회복지사 박모씨는 “중국 국적 노숙인을 발견해 주한 중국대사관에 연락해 봤지만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체류 기간이 만료돼 출입국·외국인사무소도 두드려 봤지만, 출국 조치하려면 항공권을 끊어줘야 하는데 추후에 돌려받기 어려워 소극적으로 대처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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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디찬 냉골 ‘비닐 텐트’로 버텨보지만… 수도권과 강원내륙·산지에 한파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22일 중구 서울역 앞에 노숙인들이 겨울 추위를 견디기 위해 마련한 텐트들을 쳐다보면서 한 시민이 지나가고 있다. 이재문 기자 |
김준희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단순 인력 수입이 아니라 이들이 한국에서 어떻게 생활할 수 있을지 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며 “가령 일자리를 잃어 당장 수입이 끊겼을 때 긴급하게 지원할 수 있는 체계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인권적인 관점에서 체류 기간이 만료된 자라도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에 방치하지 않도록 최저 수준으로라도 임시 주거나 의료 지원 체계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