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기 노동’ 막을 방안도 없이…연장근로 기준 ‘1일→1주’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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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4.01.22. 오후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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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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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1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주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 폐기 촉구 기자회견’.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정부가 주 최대 52시간 안에서 하루에 할 수 있는 연장근로시간의 한도를 사실상 없애는 내용으로 행정해석을 바꿨다. 지난달에 나온 대법원 판결을 반영한 조처로, 노동계는 ‘이틀 연속 21.5시간 몰아치기 노동’을 막을 별다른 방안이 없다고 우려했다.

고용노동부는 22일 “연장근로시간 한도 위반에 대한 대법원 판결에 따라 기존 행정해석을 변경한다”며 “연장근로 한도 위반 여부는 1일이 아닌 1주 총 근로시간 40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시간을 기준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지난달 7일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계산할 때 1주일 단위로 전체 근로시간이 52시간(1주 법정근로시간 40시간+1주 연장근로시간 12시간)만 넘지 않으면 법 위반이 아니라는 판결을 내놨다. 이는 하루 단위로 법정근로시간 8시간을 넘은 연장근로시간을 모두 더했을 때 그 시간이 1주일 12시간을 넘으면 불법이라고 본 기존 노동부 행정해석과는 부딪치는 내용이다.

대법원 판결대로면 근로기준법상 휴게시간(4시간당 30분)을 빼고 계산해도 하루 21.5시간씩 이틀 연속 일해도 법 위반이 아닌 셈이다. 노동계가 ‘몰아치기 노동’을 우려하는 배경이다. 노동부는 이날 “이 해석 변경은 현재 조사 또는 감독 중인 사건에 곧바로 적용된다”고 밝혔다.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일터 현장을 근로 감독할 때 사업주가 연장근로를 위반했는지 판단하는 기준으로 이날부터 주 52시간 준수 여부만 보겠다는 의미다.

노동부는 이날 “(노동자) 건강권 우려도 있는 만큼 현장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혔으나, 정작 과로를 막기 위한 제도적 보완 방안에 대해선 별달리 대책을 제시하지 않았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근로자 건강권을 보호하면서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높이는 방향의 제도개선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제도 개선이나 입법 요구를 하기보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에 관련 논의를 넘기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노동부가 이날 언급한 ‘모니터링’ 또한 노동청에 진정 등이 접수됐을 때 노동부에 사후 보고되는 정도다.

노동계는 이번 대법원 판결이 나온 배경에 하루 단위 연장근로시간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은 현행 근로기준법의 입법 미비가 놓인 것으로 보고 그동안 제도적 보완을 요구해왔다. 대법 판결 뒤 국회에는 김영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로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하루 3시간으로 제한하고, 하루 근무를 마치고 나면 다음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11시간 이상 휴식시간을 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특히 이 가운데 근무일 간 11시간 연속휴식은 지난해 정부가 ‘근로시간 개편방안’을 마련하며 유럽연합(EU) 사례 등을 참조해 제시한 건강권 보호 방안이기도 하다. 노동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상식적인 정부라면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 연장근로시간 상한 단축과 1일 연장근로 상한 설정 등을 제도화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연장근로 한도 위반을 판단하는 행정해석은 변경됐지만, 사용자가 노동자의 연장근로에 줘야 하는 수당 지급 기준은 현재 해석이 유지됐다. 즉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 연장근로에 대해선 1주일 몇 시간을 일했는지와는 무관하게 통상임금의 150%를 지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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